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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느낌, 몸으로 읽는 그림책
특집
“몸으로 읽는 그림책이라니, 그림책을 어떻게 몸으로 읽지?” 궁금할 것이다. 그림책을 몸으로 읽는다는 것은 그림책의 ‘글과 그림’에 반응하는 독자 자신만의 감각 동작 느낌을 읽는다는 뜻이다. 아래 『터널』(앤서니 브라운 / 논장)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이 장면에서 독자는 ‘빨간 옷을 입은 동생이 돌로 변해버린 오빠를 끌어안았구나!’(맨 왼쪽 그림), ‘돌이었던 오빠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구나!’(맨 오른쪽 그림)라고 이해하고 해석할 것이다. 이해와 해석에는 독자 자신의 감각 동작 느낌은 없다. 물론 돌로 변해버린 오빠를 보고 무서움을 느끼거나,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오빠를 보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정서 감정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림책을 보면서 장면과 줄거리를 이해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논장(『터널』)>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자. 아래 그림 중 맨 왼쪽 그림을 보라. 혹시 돌의 차가움, 딱딱함, 거칠거칠함이 느껴지는가? 이번엔 세 번째 그림을 보자. 혹 말랑말랑함, 따듯함이 느껴지는가? 이런 질문이 황당하고 당황스러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맨 왼쪽 그림을 보면서 딱딱함, 거칠거칠함, 차가움을 느껴보라. 만약 그런 감각이 느껴진다면 도대체 어떻게 눈으로 본 그림에서 질감과 온도감각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감각의 통합, 공감각 능력
<ⓒ르네 마그리트 「the listening room」>
옆의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서는 어떤 감각 느낌이 느껴지는가? 보통의 독자는 ‘답답하다’ ‘몸속에 뭔가 꽉 들어찬 느낌’이라고 답한다. 그림일 뿐인데 왜 답답한 느낌이 들지? 인지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공감각(synesthesia)이라고 부른다. 공감각 현상은 우리 몸속, 더 정확히는 뇌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통합(senses together) 작동이다. 우리는 눈으로만 보아도 뇌에서 관련된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움직임의 기억들이 활성화되어 만져지고 느껴지고 움직여진다. 어린 시절 좁은 공간에 들어가 있었던 기억, 혹은 꾸역꾸역 먹어서 배가 꽉 찼던 기억, 초록색 아오리 사과의 맛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공감각 현상이다. 예술가 중에는 공감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림책을 통한 부모와 아이의 교감을 원한다면, 그림책에 대한 아이의 흥미를 높이려면, 그림책 장면 속 상황을 설명하거나 줄거리를 이해시키려 말고, 또 뭔가 교육적 효과를 의도하지 말고 그저 아이가 그 책에서 느끼는 감각 동작 느낌이 어떤지 함께 나누면 된다. 그러려면 엄마와 아빠, 교사도 자신이 어떤 감각 동작 느낌을 느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럴 때만 엄마와 아이가 함께 교감하고 즐길 수 있다.

우측 『네가 만약…….』(존 버닝햄 / 비룡소)의 한 장면을 보자. 예전의 번역본 제목은 ‘넌 어느 게 더 좋니?’였다. 그대로 물으면 된다. “넌 어느 게 더 좋아? 잼을 뒤집어쓰거나, 개에게 끌려 흙투성이가 되거나, 물벼락을 맞는 것 중에서 어느 게 좋아?” 어른이건 아이건 청소년이건 셋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 후, 거기서 어떤 감각 동작 느낌이 느껴졌는지 또 왜 그걸 선택했는지 물으면 천차만별 뜻밖의 대답들로 넘쳐난다.


<ⓒ비룡소(『네가 만약…….』)>
잼을 선택한 사람은 “달콤하고 맛있잖아요(미각)”, 잼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으윽, 끈적끈적해서 싫어요(촉각)”라고 답한다. 개에게 끌려다녀 흙투성이가 되는 걸 선택한 사람은 “재밌고 신나잖아요(동작)”,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아파요(통각)” “더러워요(촉각)”라고 답한다. 물벼락을 맞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시원해요(여름, 온도감각), “가장 깨끗한 것 같아요!”,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으, 추워요(겨울, 온도감각)”라고 답한다.

그림책 온전히 즐기는 몸으로 읽기
새로운 방식의 그림책 읽기는 머리, 가슴, 몸 중에서 머리와 가슴이 아닌 몸 먼저 읽기이다. 아이들은 원래 몸 읽기를 잘한다. 그리고 아직 많은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로 잘 읽을 수도 없다. 머리로 제일 잘 읽는 사람은 어른이고, 몸으로 읽는 걸 제일 못하는 사람도 바로 어른이다. 아이는 완전 반대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처럼 읽는 연습, 몸으로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이가 함께 그림책을 읽을 때, 엄마가 자꾸 머리를 쓰게 하면 아이는 그림책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엄마가 바라고 원하는 읽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줄거리를 이해하고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 읽기를 어린이문학 교육학자들은 ‘정보 추출적 읽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몸 읽기, 감각 동작 느낌 읽기, 공감각적 읽기는 그야말로 엉뚱한 읽기, 내 맘대로 읽기, 정답이 절대 없는 읽기가 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자유롭고 신이 나고 아이 자신이 살아난다.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읽기이다. 내 오랜 경험에 따르면, 몸 읽기 방식은 아주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신나고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든다. 나를 마음껏 표현하는 그림책 읽기 속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찾아가는 읽기이다. 그런 그림책 읽기를 독서 치료 관점에서는 ‘치유적 읽기’ ‘변화를 가져오는 읽기’라고 부른다.

그런 면에서 『짖어봐 조지야』(줄스 파이퍼 / 보림)는 몸의 감각 동작을 완전히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그림책이다. 엄마가 조지에게 짖어보라고 말하자 조지는 “야옹”이라고 짖는다. 엄마가 고양이는 야옹, 개는 멍멍이라면서 다시 짖어보라고 하자, 조지는 “꽥꽥” 그리고 “꿀꿀” “음메”라고 짖는다. 엄마는 조지를 데리고 의사 선생님한테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조지의 짖는 소리를 듣더니 조지 입속으로 손을 넣어 고양이, 오리, 돼지를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지 입속으로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손을 넣었어요”라고 책을 읽어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을 찡그리거나 배를 움켜잡고 ‘으윽’ 토하려는 듯한 몸동작을 취한다.


<ⓒ보림(『짖어봐 조지야』)>

책을 읽고 나서 “엄마는 왜 자꾸 조지한테 짖으라고 했을까?” “왜 조지 뱃속에 고양이, 오리, 돼지, 소가 들어있었을까?”라고 묻지 않는 게 좋다. 머리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는 나중이다. 우선 그냥 “엄마가 읽어줄 때 몸이 어떤 느낌이었어?” 물으면 된다. 혹은 “엄마는 토할 것 같았는데, 너는 어땠어?” 묻고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혹은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길고 긴 고무장갑을 꼈어요’ 할 때 고무장갑 냄새가 났었어”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깊이 깊이 깊이 손을 넣었다고 했을 때, 몸속 어디까지 내려가는 느낌이었어?”라고 물어도 좋다. 아마도 “똥구멍”이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배꼽” “발”이라고 답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땐 “아, 깊이 깊이 똥구멍까지 내려갔구나” “배꼽 어디까지? 배꼽 아래? 배꼽 바로 위?” “발은 오른발? 왼발?”이라 물으며 궁금해하면서 반응해주면 된다. 아주 재미있다.

물론 그러려면 엄마 자신도 깊이 깊이 어디까지 내려갔는지 감각 동작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의 대답이 전혀 재미있지 않다. 내가 모르는 맛은 아이에게 경험시킬 수 없을 뿐더러 아이의 즐거움을 앗아버릴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그림책을 읽느냐 보다 어떤 방식으로 그림책을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림책 새롭게 읽기, 몸으로 읽기를 꼭 도전해보길 바란다.


신혜은_경동대 유아교육과 교수, 그림책협회 부회장 / 2018-01-01 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