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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에서 상상으로, 해외 도서관의 새로운 시도
특집 - 메이커 스페이스
메이커 스페이스는 만드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무엇이든 조립하고-분해하고-다시 만들도록 장려하는 창작 제조 공간이다. 정보 습득의 방법이나 독서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최첨단 개혁과 교육 중심지로 발 빠르게 변모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경향이 도서관 내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의 구축이다.

제작, 놀이, 협업의 공간
<ⓒ조금주, 페엣빌공공도서관>
미국 공공도서관 메이커 스페이스는 한 대학원생의 단순한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시러큐스대학교 문헌정보학 대학원생이었던 로런 스메들리는 자신이 이용하던 뉴욕 주 북부의 페엣빌공공도서관에 3D프린터를 들여놓자는 제안을 한다. 수 콘시딘 관장은 도서관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 아이디어에 반해 그녀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그렇게 메이커 스페이스는 공공도서관에 첫발을 내딛었다.
도서관에 3D프린터를 들이자 조용한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배우기 위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고, 이용자들은 핑크색 전화 케이스를 만들거나 장난감 칼을 만들기 위해 3D프린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3D프린터를 시작으로 레이저 커터기, 전자장치 세트, 작업 공구들, 라즈베리 파이 컴퓨터, 재봉틀도 설치했다.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도서관에 메이커 스페이스가 생기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사전과 지도류 같은 참고 서적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정기간행물 역시 온라인 구독으로 전환되면서 이용률이 떨어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참고 서적과 정기간행물이 있던 서가 다섯 칸을 정리하면서 열람실에 빈 공간이 생겼다.
마침 관장이 열람실을 지나다가 지역 발명가 조셉 쇼트가 네댓 살짜리 아이들과 함께 원목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을 목격했다. 다들 맨손이었지만 다친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관장의 머릿속에서 메이커 스페이스와 메이커 레지던스(메이커 스페이스에 상주하는 발명가)라는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웨스트포트도서관>
웨스트포트도서관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열람실 한가운데 새로운 섹션으로 “제작, 조립, 놀이, 협업의 공간”을 꿈꾸며 2012년 7월에 문을 열었다. 조셉의 제안으로 공간은 초기의 항공기 격납고를 본떠 만들어졌다. 비행기가 발명될 당시에 그것은 곧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였다. 메이커 스페이스 역시 정보의 시대에서 상상의 시대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했으며, 혁신의 인큐베이터이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방된 철골 구조로 만들어진 메이커 스페이스에는 랩톱 컴퓨터와 다섯 대의 3D프린터를 비롯해 십여 개의 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1.5미터 높이의 벽에는 메이커 스페이스에 대한 각종 정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잔뜩 붙어있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첫 번째 발명가였던 조셉은 4.5미터 길이의 원목 비행기 두 대를 제작해 열람실 천장에 전시했다. 이후 조시 버커는 ‘메이키 메이키(회로 보드와 전선, 집게 클립을 이용해 물건을 터치패드로 만들어주는 키트)’를 이용해 자신만의 악기를, 전자 제품 애호가인 에드 칼린은 하늘 전체를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전천(全天) 카메라를, 목수인 존 맷잭은 원목 책상을, 미디어 아티스트인 밸럼 소토는 LED 조명을 결합한 디지털 퀼트를 이용자들과 함께 만들었다.

2012년 웨스트포트도서관 앞마당에서 시작된 미니 메이커 페어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계속된다. 개인이 만든 기기와 컴퓨터 게임, 예술품 등 100여 개 이상의 창작물이 전시되며 사람들은 이를 보기 위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다. 미니 메이커 페어는 혁신 및 창의성과 관련해 코네티컷 주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 잡았다.

상상, 아이디어의 실현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두드러지며 협력과 창의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메이커 스페이스는 워싱턴DC의 마틴루터킹주니어기념도서관이다. 2015년 5월에 문을 열었으며, 패브리케이션 랩이라 이름 붙였다. 자유로운 제조를 뜻하는 제작 실험실이라는 뜻이며, 줄여서 ‘팹랩(Fab Lab)’이라 부른다. 기막히게 멋진 실험실(Fabulous Laboratory)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25평 규모로 여덟 대의 3D프린터, 3D스캐너, 레이저 커터기를 비롯해 정밀하게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컴퓨터 수치 제어 기기까지 갖췄다.


<마틴루터킹주니어기념도서관>
방문한 토요일 오후에는 마침 오리엔테이션 강좌가 진행 중이어서 각종 장비에 대한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수강생들이 좁은 팹랩을 가득 메웠는데, 기계와 공구를 주로 사용하는 하이테크 강좌여서 남성이 주를 이룰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강사도 여성, 수강생의 절반도 여성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개인 혹은 두세 명이 서로 상의하며 원하는 모델을 디자인하고 3D프린터로 출력하거나 금속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작업들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렇게 공공도서관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같은 취미와 목적을 가진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나누는 공유의 공간이다. 강사가 가르치고 이용자가 배우는 일방적인 교수 형태가 아니라 이용자 상호 간의 교류와 직접 실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용자와 자원 활동가 혹은 봉사자의 힘으로 운영되는 독특한 공간으로 실습과 경험 그리고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 공간이다. 더 나아가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창업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상과 아이디어의 실현 공간이다. 이곳에서 도서관 이용자는 정보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혹은 제작자)가 된다.

쉽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의 운영 현실
하지만 메이커 스페이스의 구축과 운영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공간의 관리와 감독,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공간을 사용하는 이용자와 봉사자 관리 등 도서관 측이 감당할 부분이 만만치 않다. 공간과 장비의 확보, 운영할 인력 문제,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의 기획과 진행, 공간과 장비의 관리, 장비 교육과 안전 교육, 예산 출입 관리 등 기존의 도서관 프로그램실 운영보다 훨씬 복잡해 도입과 운영이 쉽지 않다. 이는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메이커 스페이스 운영 사례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싱가포르 주롱지역도서관>

방문 당시 덴마크의 도컨, 싱가포르의 주롱지역도서관, 중국의 상하이도서관 메이커 스페이스들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덴마크 도컨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문이 잠겨있었고, 개방된 홀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안내 표지판만 있을 뿐 아무런 활동이 없었다. 싱가포르의 주롱지역도서관 역시 문이 굳건히 닫힌 상태였다. 두 도서관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관리 직원 없이 강좌와 일회성 행사 공간으로만 사용되는 상황이었다.

상하이도서관 메이커 스페이스는 담당 직원 한 명이 빈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입구에 사람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가 있었는데 배터리를 빼놓은 상태였다. 작동을 멈춘 3D프린터 서너 대, 그리고 열쇠로 잠긴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구글 글래스’와 3D프린터로 제작한 물건 몇 개만 전시되어 있었다. 상하이도서관 전체가 이용자들로 붐비고 심지어 복도의 책상마저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상황인데도 메이커 스페이스만 한산했다. 궁금해서 오후에 다시 찾았을 때는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학생 세 명이 책상 위에 문제지를 펼쳐놓고 학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역할과 의지, 메이커 스페이스의 성공 여부
2014년 한국 정부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이용자 제작 콘텐츠를 내세우면서 8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각지에 ‘무한상상실’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전국 56곳의 무한상상실 대부분이 체험 학습 중심의 수업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하루 평균 이용객은 10여 명이 채 안 되는 저조한 실적을 내거나 수업이 없는 대다수 시간에는 폐쇄되는 형편이다. 만약 메이커 스페이스가 관리의 어려움과 장비의 잦은 고장과 수리를 이유로 운영 시간의 대부분을 문을 닫고 있어야 한다면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 자체를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 공간은 서가들로 포화 상태이고 운영 인력은 부족하고 예산은 열악한 한국 일반 공공도서관의 현실에서 메이커 스페이스의 공간 조성과 장비 구축은 분수에 맞지 않은 값비싼 사치로 보이기도 한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모든 공공도서관들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어쩌면 특정한 이용자들에게만 매력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최신 기술에 능통하거나 기술 적응력이 뛰어나거나 이러한 기계들에 관심이 있는 이용자들이 없다면 최신 장비나 공간은 무용지물이다. 또한 예산의 제약, 협력으로 생산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과 저작권, 이를 둘러싼 법적 책임, 안전사고 예방과 관리 같은 잠재적 문제점들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메이커 스페이스의 성공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예를 들면 지식, 정보, 자원 접근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지식의 창출과 같은 도서관의 가치를 공고히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공공기관 내에 3D프린터와 스캐너 같은 최신 기술을 갖추고 지역사회에 동등한 접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들에 접근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것이다. 또한 새롭게 부각되는 창의적 신기술들에 대한 공평한 접근 제공으로 공공도서관의 중심적 사명을 되살리고 있다.

도서관 내 메이커 스페이스가 장비들을 완벽히 구비하거나 기술 중심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해당 도서관의 형편과 예산 상황에 맞게 저비용으로도 운영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간 구성과 장비 구축 이전에 적절한 운영 인력 확보와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선결되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메이커 스페이스의 성공 여부는 이 공간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역할과 확고한 의지, 이용자들의 참여 그리고 제공되는 서비스들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조금주_도곡정보문화도서관장,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 저자 / 2018-01-01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