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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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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을 꿈꾼 자가 머문 책방
연재. 한미화가 만난 사람 - 12. 제주 라이킷 안주희 대표

<ⓒ한미화>

초등학생 같은 인상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까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겉과 속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지 않던가. 제주 라이킷의 안주희 대표는 엉뚱하고 대담하다. 그녀는 경기도 한 신문사에서 편집 기자로 일했다. 제주도에 놀러왔다가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덜컥 제주에 살기로 결심했다. 가수 이효리를 비롯한 예술인들이 그렇게 제주도에 하나둘 정착했다. 그렇지만 평범한 30대 직장 여성이 제주도가 좋다고 무작정 살기는 어렵다. 다음 휴가를 기약하며 대개 직장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기 마련이다. 한데 안 대표는 2012년 훌쩍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가진 게 없으니 떠나기도 쉬웠단다. 딱히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거나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이 나면 제주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다.

남들 보기에는 하는 일 없이 2년여를 제주에서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일 저일 전전하기가 지겨워질 무렵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책방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는 책방이 귀했다. 2014년 10월 산지천과 가까운 칠성로 상가 골목 끄트머리에 책방을 열었다. 이름하여 ‘라이킷(like it)’이다.

동네책방 1세대, 공들여 만든 공간
2017년 11월 제주에 있는 동네책방 열한 곳이 ‘제주동네책방연합’을 결성했다. 지금 제주도는 동네책방 천국이다. 서울 계동에서 제주 동쪽 수산리로 이사 간 가수 요조의 ‘책방무사’까지 40여 곳의 서점이 제주에 자리를 잡았다. 라이킷은 제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생겨난 동네책방 붐 이전에 생겨난, 제주 동네책방 1세대에 속한다.
제주가 좋아 제주로 이사를 와서 서점을 시작하다니 과연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하지만 안 대표는 덤덤하게 책이 좋아 책방을 떠올렸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방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오기 편한 제주 구도심에서 빈 가게를 물색했다. 시장 안에 비어있던 양장점 자리가 눈에 들어와 계약을 했고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고 책방을 열었다.

책방에는 독립출판물, 베스트셀러, 여행서, 그림 에세이와 그림책들이 오손도손 진열되어 있다. 손님들이 아기자기한 서점을 좋아해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공간이다. 책방을 찾은 시간은 토요일 오후였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재미나게도 라이킷에는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안쪽에 두 평 정도 되는 공간이 더 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서점으로 알려진 제주 인문 서점 ‘바다의 술책’으로 독립한 ‘트멍’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문구와 엽서, 제주를 기억할 만한 작가들의 각종 소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선물 방으로 이용한다. 편집 일을 하던 솜씨를 살려 직접 만든 시 포스터나 책갈피를 비롯해 소품들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라이킷 운영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안주희 대표에게 서점을 하는 그럴듯한 철학이나 장사꾼의 욕망을 찾기는 힘들어보였다. 동네책방이라면 필수적인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너무 힘들단다. 요즘은 사진만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답한다. 가끔 어르신들이 책방에 들어오면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는데 그만큼 느린 얼굴을 한 책방 주인이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지점
어떤 질문에도 짧은 대답이 돌아오는 안 대표의 말이 길어진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하나는 책과 친해진 이유를 물었을 때다. 그녀는 이십 대 이전에는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대학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볼로냐 일러스트 선집』을 접한 후 책과 새로 사귀게 되었다. 멀티미디어학과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터라 그림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냥 책이 아니라 그림책이 신기해 자꾸 보다 보니 옆 칸에 꽂혀있는 다른 책들까지 보게 되었다.
제주에 와서 자연과 가까운 곳이 아닌 시내에 책방을 낸 이유도 제주 사람들에게 책이 재미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처음부터 독립출판물을 판매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텍스트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독립출판물은 책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젊은 세대에게 서점에 있는 책들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렇다고 삶을 강요하는 자기 계발 책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독립출판물은 비슷한 고민과 관심사를 지닌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사랑, 여행, 삶을 이야기한다. 독립출판물과 젊은 독자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왜 책을 안 읽느냐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독립출판물부터 시작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발견한 후 다른 책들로 시야를 넓혀나갔듯 지금의 젊은 세대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안 대표가 또 한 번 눈을 반짝인 건 “왜 책이 좋냐?”는 질문이었다. “책은 늘 똑같은 장소, 똑같은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하도록 이끌어요.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를 해요. 또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죠.” 맞다. 그래서 책은 머물러 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것이다.

라이킷을 시작한 지 3년이다. 3년이라면 자신이 한 일에 평가를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소감을 물었다. 담백하게 “재미있다”고 했다. 뭐가 재미있냐고 물었다. 자신이 골라놓은 책들, 추천하는 책들이 팔리는 게 재미있고 자신이 책방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신기하다고 했다.
이토록 많이 생겨난 제주 책방에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했더니 잠시 수다스러워졌던 그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요.”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에서 책방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안주희 대표를 만나보라. 자신이 하는 일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는 선배 세대들과 달리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족할 뿐이다.

한미화_북칼럼니스트, 『아이를 읽는다는 것』 저자 / 2018-01-01 09:11